AI 슬롭을 벗어나는 힘
생각을 외주화 하지 않는 법
Yoojung·2026년 6월 29일지난 6월 29일 '바이브 시대의 UX·UI: 2026 하반기 트렌드와 AI 네이티브 실무 전략' 세미나에 앞서 진행한 사전 인터뷰를 정리한 두 번째 글입니다.
Q. 같은 도구를 써도 누군가의 결과물은 AI 슬롭이 되고, 누군가는 한 끗이 다르다. 직접 목격한 '한 끗 차이'의 가장 인상적인 사례는?
가장 단적으로, 초기 기획이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단 결과부터 보려고 만들기 시작하면 슬롭(slop)이 됩니다. 보통 두 가지 측면에서 슬롭화될 수 있다고 봅니다.
1) UI 측면
최초의 디자인 가이드라인 없이 곧장 구현용 목업 단계로 들어가면, 초기에 잡힌 스타일이 다음 화면으로도 계속 이어지며 전반적으로 슬롭화됩니다. 또 AI가 자주 실수하는 디테일이 잡히지 않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요즘은 디자인 시스템을 코드로 먼저 만들거나 최소한 DESIGN.md에서 출발하면 일관적이면서도 품질 좋은 시각적 표현을 빠르게 만들 수 있어 큰 도움이 됩니다.
2) UX 기획 측면
사실 저는 UI적인 건 오히려 쉽게 고칠 수 있는데, 이 부분이 문제가 더 심각하고 빠르게 개선하기가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빨리 눈에 보이게 만들고 다듬어 나가는 최신의 워크플로우가 슬롭을 만드는 데 일조합니다. 결과물이 일단 눈에 보이면 인간은 그 시각 자료만을 토대로 다음을 생각하기 때문에, 아이디어가 다양한 방향으로 뻗지 못하고 특정 방향으로 수렴해 버립니다. 초반에는 스스로도 의도가 뚜렷하지 않은 경우가 많은데, AI가 내놓은 결과가 내 생각과 어긋나 있어도 '만들면서 고치면 되겠지' 하고 넘어가게 됩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본질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발전시킬수록 간극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결국 수정조차 어려워져 슬롭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도 초기에 AI를 사용하면서 이런 경험이 많아서 작년 말부터 프로세스를 완전히 바꿨는데요. 과거에는 특정 기획서 양식의 빈칸을 AI와 함께 채우는 시중의 방식으로 시작을 했던 적도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잘 작동하지 않아서 결국 그 방식은 버리게 되었죠. 지금은 1) 먼저 내 머릿속 생각을 최대한 다 쏟아내고(이때 AI가 내 생각을 조정하게 두지 않고 철저히 내 페이스로 끌어내는 게 중요합니다), 2) 그렇게 모인 생각을 재료 삼아 AI와 함께 기획서로 가공합니다.
여기서 특히 1)이 굉장히 힘들고 고통스러운 과정인데요. 생각을 구조화된 언어로 변환하는 과정은 원래 어렵습니다. 그래서 AI와 아이디어를 정리하다 보면 '고통스러운 과정을 생략하고 빨리 결과를 보고 싶다'는 유혹에 자꾸 빠지게 되죠. 이 유혹을 최대한 뒤로 미루고 견뎌야만 비로소 슬롭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과정에서 추천하는 건 보이스 딕테이션 앱을 쓰는 것인데요. 저는 타입리스(Typeless)라는 앱을 쓰는데, 두서없이 말한 내용을 LLM이 맥락을 유지하며 깔끔하게 정리해 주기 때문에, 생각을 꺼내는 초반에 매우 효과적입니다. 타이핑은 종종 사고를 저해하고 기획 단계를 건너뛰고 싶게 만드는 병목이 됩니다. 사람과 대화하듯 구두로 아이데이션하며 생각을 쏟아내면 최초의 의도가 가득 담긴 고품질의 생각을 글로 옮길 수 있습니다.
Q. AI를 잘 쓰는 사람과 'AI에 끌려가는' 사람의 결정적 차이는 어디에서 갈리는가?
생각을 외주화하는 사람이 AI에 끌려가는 사람입니다. 실리콘밸리에서도 'Don't outsource your thinking / judgment(생각·판단을 외주화하지 마라)'는 말이 자주 나오고 있는데요. 여기에 대해서는 이렇게 생각하시면 쉬울 것 같습니다.
"AI와 논의하고 있는데 고통스럽지 않다면, 끌려가고 있는 것이다"
아이데이션이나 기획에서 내 생각을 끌어내는 과정이 고통스럽지 않다면, 그것은 AI에 끌려가고 있을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앞서 말했듯 생각을 언어로 꺼내 정리하는 일은 원래 어렵고, 그것을 정제된 글로 만드는 일은 더 어렵습니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AI에 의존하게 됩니다. 대화가 끝나면 내 생각이 충분히 반영됐다고 느끼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가 가장 경계하는 AI 기능 중 하나가 AskUserQuestion입니다. 내가 무언가 말하면 AI가 네다섯 개의 선택지를 주고, 거기에 답하며 다음으로 넘어가는 방식인데, 그 순간 이미 우리의 선택지와 사고의 폭이 제한되고 AI가 확률적으로 생성한 것에 앵커링됩니다. 그래서 저는 기획할 때 에이전트에게 "AskUserQuestion을 쓰지 말라"고 미리 지침을 주고 아이데이션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길러야 하고, AI와 대화하는 동안에도 계속 생각해야 합니다. 고통스럽다는 것은 근육 단련과 같습니다. 운동할 때 힘들지 않으면 사실상 운동이 안 된 것처럼 말이죠.
Q. AI 시대에 'UX 전문성'의 정의 자체가 예전과 달라졌다고 보는지? 무엇이 더 중요해지고, 무엇이 덜 중요해졌는가?
예전에는 구현과 실행 비용이 워낙 높다 보니 기획은 구현을 위한 선행 단계 정도로만 여겨졌습니다. 진입 장벽이 낮다는 오해도 많았고, UX 전문성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사람들은 흔히 "화면을 예쁘게 만드는 것" 정도로만 생각했습니다. UX가 단순한 심미가 아니라 서비스에 맞는 경험을 설계하고 흐름과 기능을 고민하는 과정이라는 점을, 정성적이고 측정이 어려운 특성 탓에 설득하기가 무척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AI 시대에 들어서며 사람들이 경험 설계와 기획의 가치를 몸소 체감하게 된 것 같습니다. 그래서 기획이 꽤 어렵다는 점을 깨달으면서 기존 UX 실무자가 유리한 출발점에 서게 된 측면이 있습니다. 다만 현재 시점에 일시적으로 그런 것뿐, 기획 역량조차 훈련으로 따라잡히는 영역인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시간만 있으면 메워질 수 있는 부분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 기획력 자체만으로는 더 이상 해자가 되지 못합니다. 결국 중요한 건 에이전트 엔지니어링에 대한 이해와 개인을 넘어 조직으로 확산시키는 역량이라고 생각합니다.
흔히 바이브 코딩을 해야 한다, 직접 만들어야 한다고 하는데 그것만으로 충분하지는 않습니다. 바이브 코딩은 하나의 방법이자 현상일 뿐입니다. 경쟁력을 가지려면 에이전트 엔지니어링 자체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고, 그 바탕에는 1편에서 이야기한 기술에 대한 이해, 즉 LLM과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에 대한 이해가 통합되어 있어야 합니다. Notion의 Head of Product인 Max Schoening도 '디자이너·PM·기획자가 코딩을 해야 하느냐'에는 '예스', '그들이 프로덕션에 들어가는 실제 코드를 작성해야 하느냐'에는 '노'라고 답했는데,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코딩을 하는 목적이 무엇인지를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도구에 경도되어 AI로 했다는 사실 자체가 훈장이 되는 것은 주객전도입니다.
자동화의 가치를 판단하는 일도 어렵습니다. 자동화 프로세스를 만드는 데도, 유지하는 데도, 실행하는 데도 비용이 듭니다. 따라서 1) 정말 그 자동화가 필요한가, 2) 그만큼 중요한 일인가, 3) 이 정도 리소스를 들일 가치가 있는가를 따져야 합니다. 이런 감각은 직접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으므로 초반에는 많이 시도해 보며 자신만의 밸런스를 갖추는 것이 중요합니다.
마지막으로, 지금은 AI를 개인 레벨에서만 쓰고 있지만 이를 조직에 전파해 팀 전체의 생산성으로 연결하는 일이 중요해집니다. UI 프로토타입을 코드로 만들었을 때 어떻게 공유할지, 팀원이 깃허브 계정을 만들어 Git으로 관리할지, 협업 규칙은 어떻게 정할지 등 업무 방식이 엔지니어링 관점으로 옮겨가야 합니다. 다행히 UX 실무자는 그동안 개발자·디자이너 등 다양한 역할자와 협업해 왔기에 관련 용어와 기술 지형에 이미 익숙하다는 장점도 있는 것 같은데요. 바로 그 익숙한 지점에서부터 변화를 시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Q. 'UX 실무자라면 지금 당장 손에 익혀야 한다'고 꼽을 1~2개 도구와 그 이유는?
코딩 에이전트, 즉 클로드 코드 또는 코덱스 중 하나는 반드시 쓰라고 추천드립니다. 코덱스는 특히 앱이 잘 만들어졌고 엔지니어링·UX 측면에서도 훌륭합니다. ChatGPT를 선호한다면 코덱스 앱을, 그 외에는 클로드 코드를 데스크톱 앱의 코드 탭이나 CLI로 쓰면 됩니다. 터미널이 익숙하지 않다면 데스크톱 앱으로 시작해 CLI로 넘어가는 것을 추천합니다. 익숙해지면 CLI가 확장성과 효율 면에서 낫고, 하나의 터미널에서 여러 도구를 함께 쓸 수 있습니다. 둘은 요즘 큰 차이가 없어 취향이나 작업 적합성의 문제이며, 하나를 잘 쓰게 되면 다른 하나로 바꾸기도 어렵지 않습니다. 이 과정에서 Git 설정과 깃허브 계정 연결까지 AI의 도움을 받아 해 보면 좋습니다.
두 번째로는 앞서 이야기한 타입리스 같은 보이스 딕테이션 앱입니다. 생각을 외주화하지 않고 기획하는 초반의 고통을, 여전히 고통스럽긴 해도 조금은 줄여 줍니다. 회사에서 매일 아이데이션을 하는 것은 아니므로 회의실 등에서 한두 시간 정해 두고 써 보는 것도 방법입니다.
그 외에 UI 전용 디자인 도구에 대해 문의를 받는 경우가 많은데, 클로드 디자인, 펜슬 같은 UI 디자인 도구가 많이 나오지만 솔직히 코딩 에이전트를 잘 쓰게 되면 그런 도구가 필수적이지는 않은 것 같다고 느낍니다. 코딩 에이전트를 잘 다루면 충분히 입맛에 맞게 구현할 수 있고, 저 역시 예전에는 여러 도구를 썼지만 이제는 코덱스·클로드 코드로 수렴하는 편입니다. 특히 UX 실무자는 대부분 피그마에 익숙한데, 요즘은 피그마 MCP가 잘 되어 있고 최근 피그마 AI 에이전트도 출시되었습니다. 코딩 에이전트와 피그마를 MCP로 연결하는 것만 잘 활용해도 충분히 작업이 가능하므로, 전용 디자인 도구를 새로 깊이 익히는 것이 얼마나 필수인지에 대해서는 생각이 많아집니다.
그리고 사실 도구만큼 중요한 게 요금제입니다. 요즘은 토큰이 곧 권력이라는 말이 나오고 회사의 '토큰 복지'가 화두가 될 만큼 AI 비용이 중요해졌습니다. 코덱스나 클로드 코드를 제대로 써보려면 월 20달러 요금제로는 금방 한도가 찹니다. 제대로 일하려면 최소 100달러대가 큰 도움이 되는데, 회사 지원이 없더라도 개인적으로 그 정도는 투자할 가치가 있다고 봅니다. 다만 처음부터 100달러로 시작하기보다 20달러로 시작해 사용량 한도를 찍었을 때 업그레이드를 해도 충분합니다. 중요한 건, 가장 좋은 모델로 계속해서 AI를 끝까지 몰아붙여서 그 능력을 최대한 이용해보는 그 경험이라고 생각합니다.
Q. '누구나 만드는 시대'에 UX 실무자가 전문성을 무기로 삼으려면 가장 먼저 무엇을 해야 하는가?
누구나 만드는 시대라고들 하지만, 그것은 누구나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렸다는 것이지 모두가 이미 만들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우선은 내 것을 직접 한번 만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제대로 된 판단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구체적으로는, 자기 자신을 리서치해서 본인의 불편을 해소할 수 있는 무언가를 꼭 하나쯤 만들어 보셨으면 합니다. 나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가장 진정성 있고 동기부여가 잘 되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배우는 것이 정말 많습니다. 아직도 AI를 통해서 슬롭이 아닌 뭔가 좋은 것을 만들어내는 데는 노력도, 시간도, 돈도 많이 든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끝까지 포기하지 않을 수 있도록, 나의 문제를 풀어야 하는 것이죠.
빨리 시작할 수 있는 만큼, 빨리 포기하고 그만두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래서 자신만의 무기를 가지려면 시간을 들여 소위 삽질을 해 보는 것, 그것이 이 시대의 진정한 전문성이 아닐까 합니다. 예전에는 실력이 부족했던 사람도 이제는 시간을 투자하면 충분히 따라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그들이 쫓아오는 동안 멈춰 있지 말고, 누구도 알려주지 않고 알 수도 없는 독보적인 경험을 최대한 많이 쌓아 더 앞서 나가야 합니다. 그런 경험을 통해 1) 내가 가진 UX 지식을 AI와 어떻게 결합할지 자신만의 프레임을 세울 수 있고, 2) 이를 자산화하거나 콘텐츠화할 수도 있습니다. 아직 정답이 없는 시기인 만큼, 직접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경쟁력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